시시한 저녁
<걱정과 불안>
unloved
2017. 5. 6. 21:58
시골에 노부모를 두고 나는 스물에 상경하여 여직 서울 생활 중.
자식 많은 집 늦둥이로 태어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할머니냔 물음을 들은 나로선 요즘 들어 부모님의 노쇠한 모습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가니 모친은 퉁퉁 부은 손목을 잡고 황망히 앉아 계셨고 내가 괜히 사고를 쳤다며 어쩌냐 하시는데 한 눈에 봐도 골절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병원은 영업 종료.
읍내를 거쳐 그나마 준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응급처치를 하고 돌아왔다.
손목 두 군데가 골절이었다.
난생 처음 반깁스를 한 모친은 연신 아프진 않다며 아무렇지 않다 하시지만 여간해선 아프단 소릴 안 하시는 분이니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다.
다음 날도 연휴.
좀더 큰 병원 응급에서 정형외과 의사를 만났다. 골절 확진을 받았고 어제 방치했던 뒤틀린 손목을 맞추었다.
젊은 사람이라면 수술을 권했겠지만 연로하시고 뼈가 극도로 약한 양반이라 깁스 두 달로 지내보기로 하였다.
아직 붓기가 덜 빠졌으니 다음 주에 와서 통깁스를 하는게 낫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일주일.
나는 모친과 함께 밀린 농사일을 하느라 바빴고 그와중에도 밥은 이제 어쩌냐며 짜증을 부리시는 아버지께 화도 좀 내었다.
오빠네도 내려오기도 하겠지만 나는 내일 서울로 다시 가야하고 새직장에 출근도 앞두고 있어 이것저것 심란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친의 건강이 너무 걱정이다.
걱정의 95퍼센트가 우리가 해결 못 할 아직 벌어지지 않을 것들이라곤 하지만 내가 해결 못한다 해서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해서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꿈자리가 사납다는 말 믿지 않았는데 얼마전 울면서 깨게 했던 꿈이 계속 떠오른다.
서울에 올라가면 또 내 삶을 사느라 정신없을거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걱정과 불안은 좀처럼 가시질 않으니 힘들다.
옆에서 모친과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얘길해도 애틋하고 짠해서 눈물이 날 정도랄까.
다시 태어난다면 젊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싶다, 라는 어렸을 적 소원이 새삼 떠오른다.
자식 많은 집 늦둥이로 태어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할머니냔 물음을 들은 나로선 요즘 들어 부모님의 노쇠한 모습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가니 모친은 퉁퉁 부은 손목을 잡고 황망히 앉아 계셨고 내가 괜히 사고를 쳤다며 어쩌냐 하시는데 한 눈에 봐도 골절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병원은 영업 종료.
읍내를 거쳐 그나마 준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응급처치를 하고 돌아왔다.
손목 두 군데가 골절이었다.
난생 처음 반깁스를 한 모친은 연신 아프진 않다며 아무렇지 않다 하시지만 여간해선 아프단 소릴 안 하시는 분이니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다.
다음 날도 연휴.
좀더 큰 병원 응급에서 정형외과 의사를 만났다. 골절 확진을 받았고 어제 방치했던 뒤틀린 손목을 맞추었다.
젊은 사람이라면 수술을 권했겠지만 연로하시고 뼈가 극도로 약한 양반이라 깁스 두 달로 지내보기로 하였다.
아직 붓기가 덜 빠졌으니 다음 주에 와서 통깁스를 하는게 낫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일주일.
나는 모친과 함께 밀린 농사일을 하느라 바빴고 그와중에도 밥은 이제 어쩌냐며 짜증을 부리시는 아버지께 화도 좀 내었다.
오빠네도 내려오기도 하겠지만 나는 내일 서울로 다시 가야하고 새직장에 출근도 앞두고 있어 이것저것 심란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친의 건강이 너무 걱정이다.
걱정의 95퍼센트가 우리가 해결 못 할 아직 벌어지지 않을 것들이라곤 하지만 내가 해결 못한다 해서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해서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꿈자리가 사납다는 말 믿지 않았는데 얼마전 울면서 깨게 했던 꿈이 계속 떠오른다.
서울에 올라가면 또 내 삶을 사느라 정신없을거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걱정과 불안은 좀처럼 가시질 않으니 힘들다.
옆에서 모친과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얘길해도 애틋하고 짠해서 눈물이 날 정도랄까.
다시 태어난다면 젊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싶다, 라는 어렸을 적 소원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