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애기>
아버지의 증상은 다행히도 당뇨 합병증상이었다. 이것저것 최악의 수만 생각하다 그나마 약으로 해결이 될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더욱이 아버지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극심한 상태이셨는데, 병원에서 정상이라고 하니 그것으로 마음의 짐을 다 내려 놓으신 것처럼 예전의 꼬장꼬장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돌아왔다. 너무 그 변환의 텀이 너무 순식간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런 모습마저 우리 아버지다워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 웃음을 내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한 부모가 99명의 자식은 키워도 99명의 자식이 한 명의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다더니 참 그 말이 맞는 듯 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더 주지 못해 마음을 아파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하나라도 더 받지 못해 속상해하니 말이다.
나이가 들어 부모님의 노쇠를 목도하는 순간 순간마다 (사실 서울과 본가의 거리가 있고, 자주 찾아 뵙는 자식도 아니어서 뜨문뜨문 집에 내려갈 때마다 갑자기 너무 늙으신 것같은 부모님을 보고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
불안. 걱정. 두려움.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데, 나이가 들면 감정적으로는 나이브해 진다고 하던데 스무살 때와는 또다른 감성의 불안과 걱정으로 똑같이 밤을 지새우곤 한다. 그리고 이 대부분의 걱정들은 정말 사실은 쓸 데라곤 하나도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정말 사서 하는 걱정. 그런데 그런 걱정들때문에 힘들고 불안하고 잠을 못 자니 억울하고 답답할 노릇이지.
앞으로 나는 우리 부모님과 몇 번의 봄을 더 맞이하게 될까? 영원은 없고 부모님 혹은 나는 이 세상이 없는 날이 올 텐데, 나보다 빨리 고아가 된 친구들을 볼 때마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불가능한 지 알기에 더욱 엄두가 안 나기도 하다. (이런 생각도 쓸모가 없어.)
지난 설에는 아버지가 할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하셨다. 워낙 산소니 뭐니를 찾아 뵙는 것에 강제도 권유도 없는 집안이라 가자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선뜻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따라가 보았는데 아버지가 봉분을 새로 세우셨더라. 거기에는 자식들 이름도 있었고, 내 이름도 있었고.
아버지 숙원 사업이라고 하시던데, 아버지의 아버지를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다만 아버지가 아직도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시는구나 혹은 아직도 생각을 하시는구나 싶어서 그 부분은 좀 슬펐다.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의 딸이고,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아들인데 어느 순간 딸과 아들의 역할은 오간데 없고 엄마와 아버지의 역할만 지고 있으니 얼마나 피곤하실지.
사회에선 시니어 취급을 당하며 어른인 척 하지만 아직도 속은 이렇게 어린데, 엄마와 아버지도 사실은 속은 어린 어린이가 아닐까? 각자의 부모에게 사랑받고 기대고 싶은데 이제 그 어디에도 내 부모는 없어서 매일매일 꿈속에서 울면서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자식들 앞에서는 애처럼 울수도 없고, 울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 꿈 속에서라도 맘껏 부모님 품에 안겨 있는 것은 아닐까?
어른이라고 꿈마저 어른처럼 꾸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서인지, 나는 꿈 속에서나마 우리 엄마 아버지가 부모님의 품에 안겨 애기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보드랍게 위로 받기를 바란다. 내가 줄 수 없는 평화와 고요의 시간을. 그래서 그 순간 만큼은 정말 완벽한 행복의 모습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