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저녁

사탕 하나로

unloved 2014. 11. 6. 14:48

오른쪽 무릎 바깥쪽의 힘줄이 부어서 2주 째 물리 치료를 받고 있다. 

다니는 병원은 회사 옆에 있는 재활 병원이어서 환자는 90% 이상이 노인분들이며, 나같이 뜨내기 손님들이 물리 치료를 받는 곳. 

다리가 아파서 절뚝이다가도 물리 치료실에 올라가서 뵙는 창백한 얼굴의 노인 분들을 볼 때면 멀쩡하게 걷게 된다. 

마치 뽀얀 설렁탕 국물에 송송송 얹혀진 파란 파처럼 화장을 뽀샤시하게 한 물리 치료사들이 무척이나 튀어 보이는 풍경.

각설하고.

근 2주 동안 물리 치료를 받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할아버지 사탕 드셨어? 할머니 사탕 먹었어요?

라는 말이다.

힘들고 기운이 없는 분들에게 단 사탕으로 기분 전환을 하고 당을 높여 주려고 그러는건가 궁금했다.

그런데 듣고 있자면 내가 짜증날 정도로 집요하게 사탕 드셨어? 사탕 줄까요?를 물어보는 것이다. 아니 그깟 사탕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데, 마치 그걸 먹으면 자기들을 덜 귀찮게 하는 것마냥 필사적으로 묻는 것을 들을 때마다 야, 저 정도면 질려서라도 야, 그냥 사탕 갖고 와! 라고 화가 날 것 같았다.

오늘도 여전히 옆 침대의 할아버지에게 묻더라. 할아버지 사탕 드셨어요? 사탕 먹을까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아마 고개만 끄덕이시거나 저으셨겠지.

아마 오늘은 끄덕이신 모양이다. 사탕 껍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 할아버지 사탕 껍질을 이렇게 잡고. 응 그렇지 잘 하셨어요. 양쪽으로 잡고 쫙 찢으면 돼요~. 아셨죠? 자 이제 해 보세요. (조용) 할아버지, 저랑 같이 해 볼까요? 응, 그렇죠. 그렇게 힘있게 쫙 찢으시면 되는 거예요. 알았지요? 해 봐요! 자! (찢는 소리) 와, 우리 할아버지 잘 하셨다! 힘 세시네!"

아, 아침에 당 떨어져서 사탕을 잡숫게 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거 해 달라, 이거 안 된다, 아프다 라고 하며 자기들을 귀찮게 하니까 사탕을 주며 달래려고 했던 게 아니었구나. 

사탕 봉지를 뜯는 사소한 행동도 어르신들에게는 하루 운동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 드신 분들은 짜증날 정도로 사탕드셨냐를 물어보며 졸졸졸 귀찮게 했던 것이다. 

조용히 물리 치료를 받고 싶은데 큰 소리로 사탕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에 짜증이 났던 나를 반성했다. 내가 짜증난 것만 생각하니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미처 생각을 못한 것이다. 

사탕 하나로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