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저녁
이 비는 방사능이라잖아!
unloved
2011. 4. 10. 20:52
전국적으로 방사능 비가 온다고 했던 4월 6일.
옛 직장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 그런데 한 친구의 예민한 남편(내 의견이 아니라 친구가 그리 표현을 했다. 두어 번 만났던 나로서는 그의 예민함 같은 것을 알 리 만무하고.)이 방사능 비가 오는데 어딜 나가냐며 화를 냈다고 하여 그 전날 급 번개처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대문이 직장인 그 친구는 자기 키 만한 골프 우산 두 개를 안고 나타났다.
집에 우산이 없다나?
나는 마구 비웃어주며 차라리 우비를 사지 그랬냐며 놀렸지만 '예민한 내 남편때문에......' 라고 하며 멋쩍게 웃어 넘기는 그녀의 웃음에서 그녀의 행복의 실체를 본 것 같아 살짝 부러웠다.
행복. 그 얼마나 달콤한 단어인가.
행복. 그 얼마나 요원한 단어인가.
행복. 그 얼마나 사치스러운 단어인가.
행복. 그 얼마나 치사한 단어인가.
자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보면 '아, 너는 참 행복하겠구나' 하며 고 어린 것의 행복까지 질투하는 못난 인간이 바로 나다.
그런데 말이다. 자고 있는 아기가 과연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원래가 그리 호락하지가 않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나의 욕망 성취 여부에 따라 딸려오는 메마른 건빵 속의 별사탕 같은 것이 바로 행복이다. 그러니 내가 건빵을 무지하게 먹고 싶어하지 않는 이상, 아니 건빵이고 뭐고 그게 먹는 것인지 아닌지도 구분을 못하는 이상, 별사탕을 먹어 보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울 아기는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목적적인 잠을 자고 있는 아기는 행복하지도 않고, 행복을 갈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정말 순도 100%의 수면만 취할 뿐인 것이다. 그래, 아기들은 행복하지 않다. 음. 그렇지.
아, 느닷없이 자고 있는 아기에게서 행복을 빼앗은 치졸한 어른이 된 것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왠지 웃고 있구나, 나.
음휏휏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