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저녁

<정말 지천에>

unloved 2019. 7. 30. 23:28

한 동안은 잠잠했었지. 지인들의 부고가. 

그래서였는지 또 잊고 살았었지. 

죽음이란 것은 반드시 오는 것. 두렵지만 그것은 바뀌지 않는 현실. 그러나 어떻게해서든 피하고 싶은 현실. 

지인들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을 가고 울적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나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린다. 요즘이 그렇다. 그 사람이 나와 아주 먼 관계여도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에게는 내 부모의 죽음을 연상케하여 정말 말도 못하게 두려움에 시달린다. 우습지만 안 그러려고해도 안 그럴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그래서 그러한 마음 상태가 되면 정말 모든 것이 두려워 누가 건드리기만해도 울어버릴 정도로 나는 날카로워지고 잠을 못 자고, 피곤해한다. 어제도 4시에 일어나 극도의 불안에 시달렸다. 불안이란 대부분이 형체도 없이 딱 내 몸 만큼의 크기로 시체처럼 누워있는 나를 덮친다. 잠을 좀 자고 싶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그리고 또 불안에 시달리고. 악순환이다. 

걱정해 봐야 소용이 없더라, 그러니 그냥 흘러가는 수밖에, 라고 이제는 제법 이러한 불안의 감정에 익숙해진 것처럼 허세를 부리지만. 글쎄, 매번 이렇게 며칠을 꼬박 발발 떨며 보내는 걸로 봐선 난 아직 멀었다. 도대체 왜 이모양일까.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그 뒤의 내 자신이 못 미더워서?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아름다운 엔딩은 아닐 것 같아서? 삶은 근본적으로 비극이라는 말.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알 수 없는 불안의 공포는 설명이 되지 않으니. 

외롭다. 누군가에게 내 이런 마음을 고스란히 모두 꺼내어 보이고 싶은데 누군가는 없고, 나는 혼자서 불면의 밤을 보내며 끙끙 앓듯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시간은 나처럼 구질구질하지 않으니까 쿨하게 흘러가고 내가 아프던 죽겠던 상관하지 않는다. 야속하지만 그렇게라도 내 고통을 잡고 끌고가 준다면, 그래서 머리부터 닳아 꼬리까지 모두 닳아 없어지게 해준다면야 더 바랄 게 없다. 좀스러운 스타일은 아니니까 늘 그렇듯 무심하게 나의 고통을 짊어지고 갈 거다. 

겨울이 가고 지천에 봄이 피었네요. 

봄이 가고 여름이 온통 펑펑 내렸네요. 

라고 동시를 쓰고 싶었으나, 정말 지천에 죽음 뿐인 요즘인 듯하여 힘들다.

나에게 평화를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