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watermelon sugar
그런. 본문
타로를 보았을 때, 반 장난 반 진심이었다. 그러나 꼴 좋게 심심하네요, 삶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안의 광폭한 신경의 파도를, 내가 진심으로 괴로워하며 인생이란 꽃같은 것이라 죽을 것처럼 괴로워했던 모든 것들이 마구 부정되었다. 그리고 심심하네요, 삶이. 라는 한 마디의 말로 압축되었다. 멱살이라도 잡고 네가 뭘 아냐, 라고 하나에서 열까지 내 인생의 우울했던 나부랭이들을 마구 쑤셔 넣고 싶었지만, 너무나 시원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고 나는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엇이 왜 처음본 그에게 부끄러웠던 것일까?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그가?
물론 그는 나를 잘 모른다. 그리고 잘 알 필요도 없다. 내가 화가 났거나 부끄러웠거나 그런 것 역시 알 바 아니다. 타인의 삶이란 그렇게 간단하고 쉽다는 것을 간과하고 나는 보기좋게 그의 한 마디에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부끄러웠다. 그 한 마디에 내가 그렇게 동요했다는 것이. 나의 심지가 그렇게 허약하게 흔들리는 것이. 그것이 말도 못하게 부끄럽고 화가 났다. 그리고 아직도 그 한 마디의 말이 망령처럼 나의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시시 때때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나를 너무 비참하게 한다. 넘치지 않는 풀. 딱 그 정도.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넘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삶이었는데, 이렇게 간단히 상처를 입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에, 무엇을, 무엇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일까?
성가신 장염에 짜증이 치솟고 있다. 그래서 더욱 사나운 것일 수도. 사실 요즘의 나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감정의 굴곡이 없었으니까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주자. 그래, 그러자.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면서 아, 다시 한 번 내 사람들을 사랑하자고 다짐했다.
프로이트 할아버지의 어쩌고저쩌고따윈 모르겠고, 나는 사랑을 하겠다는 거다. that's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