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watermelon sugar
<잊을만하면> 본문
8월이다. 덥다. 많이 더운 것 같다.
오랜만에 동네 카페에 들렀다. 주말이라 사람이 없어 한산하고 좋다. 밖은 찌는 더위인데 카페는 가벼운 외투를 걸쳐야 할 정도로 시원하니 참 좋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모두 피서를 카페로 하는 거겠지만.
요근래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워 그냥 이리저리 마음부림에 휘둘렸는데 쨍쨍한 볕 아래 서니 덥다는 생각 외에는 잡념이 들지 않아 이런 점은 참 좋구나 하는 참이다. 한창 힘들 때에는 마냥 걷기를 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계속 그냥 걷는 거다. 그러다보면 다른 건 모르겠고 몸에서 하나 둘씩 아픈 곳이 느껴진다. 발바닥이 아프다던가, 무릎이 뻐걱거린다던가. 그런 몸의 소리에 정신이 팔리면 더욱 좋다.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게 되고 그것만 신경쓰게 되니까. 그리고 조금 괜찮아지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는 상념들. 그럼 나는 더 속도를 내며 몸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 다분히 몸에게는 좋지 않은 방법이지만, 몸과 마음은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하니 이 정도는 도움을 주고 삽시다, 의 마음으로 양해를 구한다, 몸에게. 물론 괜찮다는 허락의 말은 한 번도 듣질 못했다.
얼마 전 카카오톡이 기능을 살피다 숨김기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있었던 기능이었는데 초창기를 제외하곤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아 이거 뭐지? 하고 눌러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사람들(그러나 현재의 그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기 모두 모여 있었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아는 전직장 사람들, 그보다 더 오래전 나아 제법 가까웠던 친구의 묶음에 있었던 사람들, 그 전에도 잘 모르고 지금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정말 숨김 묶음 안에는 서로 너무나 무관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한동안 꽤나 친했던 친구(남자애)를 발견했다. 그 친구가 숨김에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프사를 보아하니 아직도 전화번호를 안 바꾸고 꽤 부지런히 교체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그리고 너무 어이없이 그 때 당시 우리가 제법 친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당황스러웠고.
우리는 그래, 친했다. 이성 친구였음에도 사귀진 않았다. 그런데 친했다. 그 흔한 스킨십도 없었다. 그런데 친한 건 맞다. 그런데 스킨십이 없어서였을까? 너무 어이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멀어졌다. 사귀는 사이였으면 그만 헤어져, 라는 작별의 인사라도 있었겠지만 그런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않게 서로의 삶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서로가 없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어쩌면 우정이란 것은 이러한 것이겠지. 달과 같은 것. 나를 둘러싸고 휘휘 돌며 가까워도 졌다가 멀어지는. 그러나 한 번도 붙은 적이 없어서 멀어질 때에도 둘다 전혀 아무런 손상도 없이 자신 본연의 모습을 잘 챙겨서 멀어질 수 있는. 그런 관계, 그게 우정이란 것이겠지.
그리고 그렇게 멀어져 또다른 행성들과 각자의 삶의 망을 형성하여 살고. 가끔 이렇게 뜬금없이 떠오를 때면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의 자리에서 나의 삶 속에 있었던 때의 그를 떠올리고. 우리는 다시는 같은 공간에서는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영원히 각자의 삶 속에서 가끔씩 함께 했던 시간만 추억하며 살게 되겠지.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나 나는 이 숨김 기능을 통해 반갑지 않은 추억을 소환하게 되었고, 왜 우리가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떠올리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 지금도 감정의 쓰는 데 능숙하진 않지만 그 때의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숨김의 방에 있는 사람들의 숨김의 방에는 나도 있을까? 아니면 차단의 방에 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은 사람일 것이고 차단하고 싶은 사람일테지? 그리고 우연찮게 나처럼 숨김의 방문을 열고 반갑지 않은 과거를 소환하며 과거를 훑기도 하겠지?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뜨겁던 시간이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이 된 것을 씁쓸해하면서.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과거의 연인과는 또 다른 인연들.
부디
잘 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