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watermelon sugar
<잔인한 봄날> 본문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삶이 바뀔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더더욱이나 몰랐다.
그런데 타격을 받고 있다.
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어 병원을 가시게 되었다.
본인의 건강 이상보다 코로나에 걸리진 않을까, 혹은 이미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고 계신다.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 없는 노인촌이다보니 마을 이장부터 어르신들은 코로나 걸리면 다 죽어요, 하는 판이니 두려워하실 만도 하다. 더욱이 우리 아버지는 당뇨 고혈압이 있으시기 때문에 기저질환이 있으니까 정말 죽어요, 했을 거고 그 때문에 더 무서워 하신다.
건대 병원을 가셨는데, 사람이 많아서 무섭다고 하신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기다리지 않고 검사를 받을 때를 제외하곤 병원 밖으로 나와서 걷고 계신다고. 항상 호탕하게 크게 웃으시던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 힘이 없고 쓸쓸한 목소리.
오히려 엄마가 더 평온하다.
사실 코로나 증상이 있지도 않은데, 아버지는 왜 코로나에 꽂히셨을까.
밥도 엄마에게 따로 먹겠다고 하고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리고 당신은 며칠을 한 숨도 못 주무시고 몸은 스트레스로 더 안 좋아지셨다.
여자처자 병원에서 피검사로 정상이라는 소견은 얻었으나 시력에 이상이 있어 검사를 해 두신 상태이시다.
일단 코로나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하셨고, 전보다 기분이 나아지긴 하셨으나 그래도 예전같은 호탕함은 없다.
두려움.
이것이 사람을 얼마나 갉아 먹는 지, 공포가 우리를 얼마나 허약하게 하는 것인지 나는 몸소 느낀다.
코로나 이후의 삶.
이제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는 갈 수 없겠지.
그렇다면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당장 다음 주가 엄마 생신인데 갈 수나 있을런지. 동네에서는 자식들이 타지에서 오는 것도 꺼리는 분위기라, 자식들이 오고 간 사람들은 당분간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했단다. 죽음의 공포가 감싼 마을의 분위기가 얼마나 사람을 더 힘들게 하고 두렵게 할 지 상상을 할 수 없다. 모이지 말라고 경로당도 폐쇄를 하였다는데.
나는 봄이 오면 아버지와 함께 등산이나 하고, 꽃이나 보고 농사일이나 돕고 그러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감염원이 될까 봐, 내가 내 가족 혹은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점염을 시켜 그 사람에게 큰일이 생긴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까.
서로 조심하는 것보다 내가 더 조심해야하고, 내가 내 부모의 내 가족의 공격원이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다.
부디 내일 아버지 검사 결과가 좋기만을 기다려 본다.
당분간 쩌렁쩌렁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 지라도, 검사 결과라도 좋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으실까?
2021년의 봄.
잔인하다.
4월은 늘 그랬던 것 같아. 생각해 보면.
코로나로 인한 불황. 타격. 이건 아마 여름이 지나면 체감할 수 있겠지.
삶이 어디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다.
하긴 어디로 흘러가지 않고 멈출 지도 모르는 데, 무슨 소용이람.
그래도 사과나무는 심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