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watermelon sugar
아 망했어 본문
새해 시작은 초등동창 s 아버지의 부음부터였다.
s는 나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대학 입학 후 급격히 멀어져 지금은 1년에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을 정도로 격조한 사이다.
근데 우연찮게도 잊을만 하면 s가 나에게 연락을 하여 간간히 관계가 유지되는 정도랄까?
물론 어린 시절 첫 연락 때는 무척 반가워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연락이란 것이 다단계에 빠진 s가 다단계 교육의 일환으로 옛친구들에게 하나씩 전화를 돌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이란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성격이 개지랄이었던 나는 다단계 교육장을 뒤집어 놓고 나오며 s에게 다시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였고 s와는 그렇게 연락이 끊긴 게 첫 두절.
그런데 몇년 뒤 s는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 결혼해, 하며 결혼 초대 전화를 하였고 나역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s의 결혼식에 참석해 진심으로 s의 결혼을 축해해주었다.
그리고 두번째 연락 두절.
그러다 몇개월 전 또 몇년 만에 s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부를 정리하며 아직도 이 번호가 맞나싶어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연락이 끊어진 사이 s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인천에서 살고 있으며 하던 일을 관두고 보험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고딩 동창넘에게 보험을 추천하려고 청주까지 갔다가 문전박대 식의 대우를 받고 와서 너무 섭섭하다는 얘기를 한참했다.
나는 그넘 싸가지 없는 거야 예전부터 알아줬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상처를 받고 그러냐 그 정도로 상처 받을거면 보험일을 관두라고 핀잔을 주었는데 핀잔보다 그넘 욕을 해 준 것이 맘에 들었는지 s는 두 시간 정도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에게 보험 추천을 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모르면 몰라도 s의 통화 목적을 안 이상 나는 계속 동네 한 바퀴만 빙빙 돌 순 없어, 나는 이미 보험은 다 정리했으니 권할 필요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스무 살 다단계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나에겐 꽤 큰 배신의 경험이고 상처여서 보험으로 s와 연관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겐 전혀 없었고 그래서 딱 잘라 말을 한 것이다.
s도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더이상은 권하지 않았다. 그리곤 아버지가 암이라 건강이 좋지 못하단 얘기로 껑충 화제를 넘겨버려 나는 뻘쭘하게 걱정 반 위로 반을 하면서 통화를 마무리했는데, 그저께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팀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집으로 돌아와 검은색 옷을 싸서 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야간 운전은 웬만해선 하지 않는 터라 고속도로 운전할 땐 긴장이 제법 되었다.
8시쯤 본가에 도착해 나 기다리느라 밥도 못 잡수신 모친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동창들과 함께 갈까했지만 다들 5, 6년은 연락도 안한 사이여서 오히려 혼자가 편했다.
상복을 입고 나를 맞아주는 s보다 내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s의 두 아이들이 신기해 한참을 서서 보았다.
첫째가 벌써 아홉살이라고 하니 우린 최소 9년을 못 본 건가?
s의 9년엔 두 아이라는 또렷한 결과물이 있는데 나에겐 아무 것도 없어 나는 약간 부끄러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게 없을 지라도 내 안의 나는 이만큼 컸다고, 성숙했다고 말이에요, 라고 대구처럼 변명하듯 말하기도 뭣하고 해서 관두었다.
우리도 이제 말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 말들은 안 하는 게 오히려 예의란 것쯤은 알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그게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망했어!
뭔가 오랜만에 만난 나의 옛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에 대해 얘길하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네ㅋㅋㅋ
역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면 이런 식이된다는 걸 또한번 느끼게된다.
s는 나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대학 입학 후 급격히 멀어져 지금은 1년에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을 정도로 격조한 사이다.
근데 우연찮게도 잊을만 하면 s가 나에게 연락을 하여 간간히 관계가 유지되는 정도랄까?
물론 어린 시절 첫 연락 때는 무척 반가워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연락이란 것이 다단계에 빠진 s가 다단계 교육의 일환으로 옛친구들에게 하나씩 전화를 돌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이란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성격이 개지랄이었던 나는 다단계 교육장을 뒤집어 놓고 나오며 s에게 다시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였고 s와는 그렇게 연락이 끊긴 게 첫 두절.
그런데 몇년 뒤 s는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 결혼해, 하며 결혼 초대 전화를 하였고 나역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s의 결혼식에 참석해 진심으로 s의 결혼을 축해해주었다.
그리고 두번째 연락 두절.
그러다 몇개월 전 또 몇년 만에 s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부를 정리하며 아직도 이 번호가 맞나싶어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연락이 끊어진 사이 s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인천에서 살고 있으며 하던 일을 관두고 보험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고딩 동창넘에게 보험을 추천하려고 청주까지 갔다가 문전박대 식의 대우를 받고 와서 너무 섭섭하다는 얘기를 한참했다.
나는 그넘 싸가지 없는 거야 예전부터 알아줬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상처를 받고 그러냐 그 정도로 상처 받을거면 보험일을 관두라고 핀잔을 주었는데 핀잔보다 그넘 욕을 해 준 것이 맘에 들었는지 s는 두 시간 정도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에게 보험 추천을 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모르면 몰라도 s의 통화 목적을 안 이상 나는 계속 동네 한 바퀴만 빙빙 돌 순 없어, 나는 이미 보험은 다 정리했으니 권할 필요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스무 살 다단계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나에겐 꽤 큰 배신의 경험이고 상처여서 보험으로 s와 연관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겐 전혀 없었고 그래서 딱 잘라 말을 한 것이다.
s도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더이상은 권하지 않았다. 그리곤 아버지가 암이라 건강이 좋지 못하단 얘기로 껑충 화제를 넘겨버려 나는 뻘쭘하게 걱정 반 위로 반을 하면서 통화를 마무리했는데, 그저께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팀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집으로 돌아와 검은색 옷을 싸서 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야간 운전은 웬만해선 하지 않는 터라 고속도로 운전할 땐 긴장이 제법 되었다.
8시쯤 본가에 도착해 나 기다리느라 밥도 못 잡수신 모친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동창들과 함께 갈까했지만 다들 5, 6년은 연락도 안한 사이여서 오히려 혼자가 편했다.
상복을 입고 나를 맞아주는 s보다 내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s의 두 아이들이 신기해 한참을 서서 보았다.
첫째가 벌써 아홉살이라고 하니 우린 최소 9년을 못 본 건가?
s의 9년엔 두 아이라는 또렷한 결과물이 있는데 나에겐 아무 것도 없어 나는 약간 부끄러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게 없을 지라도 내 안의 나는 이만큼 컸다고, 성숙했다고 말이에요, 라고 대구처럼 변명하듯 말하기도 뭣하고 해서 관두었다.
우리도 이제 말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 말들은 안 하는 게 오히려 예의란 것쯤은 알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그게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망했어!
뭔가 오랜만에 만난 나의 옛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에 대해 얘길하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네ㅋㅋㅋ
역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면 이런 식이된다는 걸 또한번 느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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