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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watermelon sugar

<잠잠한 악몽> 본문

시시한 저녁

<잠잠한 악몽>

unloved 2018. 10. 16. 00:00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이리저리 기억은 헝클어졌고 무슨 꿈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악몽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 숨도 못 잤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고, 자지 못한 이유는 악몽 때문이었으니까.

아 가만, 잠을 자지 않았는데 꿈을 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가? 그럼 정정한다.

잠다운 잠은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밤새 악몽의 거리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꿱꿱 소리를 지르며 걸어다녔을 테니까. 

이제 좀 자고 싶다, 라고 정말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 있을 땐 이미 출근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때 까지도 내 몸엔 축축한 악몽이 휘감고 있어서 휘적거리며 욕실에 들어갔다.

무슨 꿈이었을까?

나는 잠꼬대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자맷님은 나를 찾아와 내 잠꼬대에 대꾸도 하고 잠을 깨워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제도 혹시 잠꼬대를 하지 않았는지 물어 보았으나 어제는 그러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선연하게 악몽이라고 잠을 자지 못한 건 그것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것일까.

사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왜 꼭 그게 악몽 때문인 것처럼. 왜 꼭.

나의 악몽은 대부분이 고문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몸이 토막 나거나 등의 신체적으로 아주 힘든 것들이었다. 

나는 내 꿈에서조차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는지 마지막까지 살지 못하고 악몽의 초반에 어이없이 죽어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좀비처럼 혹은 관찰자가 되어 내 악몽의 전개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하였다. 좀 다행인 것은 오히려 그렇게 일찍 죽는 게 맘도 몸도 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악몽이라고 하여도 진저리를 칠 정도로 힘들고 무섭진 않아서 그럭저럭 여유를 가지고 견딜 수도 있었다.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고문이겠지. 발 뒤꿈치의 아킬레스 건을 노린 칼의 그어짐이라던가, 양 손목이 잘리는 기절할 정도의 고통이라던가. 그런데 왜 나는 꼭 이런 꿈을 악몽으로 꾸게 되었을까? 이런 악몽을 꾼 건 어른이 된 이후인 것은 확실한데, 레파토리가 전혀 발전이 없다. 질릴 정도로 비슷한 패턴이고, 나는 악몽을 꿀 때마다 이제는 아 쫌! 하면서 지겨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유체이탈을 하여 내 악몽을 즐기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는데 이것도 십 년이 넘어가니 익숙해 지네요, 하며 짐승같은 적응력을 뽐내는 것 같아 같잖네. 

아이처럼 무너진 얼굴로 엉엉 울기도 하고, 아아악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참 다양하기도 하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성인은 보통 얼마나 자주 악몽을 꾸는 것일까?

그리고 악몽을 꾸며 아이처럼 울거나 잠꼬대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가?

네, 아주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현실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꿈에서 해소하려는 욕구에서 발현되는 것이 바로 꿈이니까요. 그렇게라도 해소가 되는 사람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봐야죠. 꿈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끙끙 앓는 사람들도 많은 걸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라고 의사 선생님이나 누군가가 이야길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

그럼 오늘 밤 또 악몽에 시달리더라도 아주 기꺼이 내 두 손을 내어줄 의향이 있는데 말이다. (미안 손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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