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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watermelon sugar
날씨가 추워지면 몸보다 맘이 먼저 곱는다. 더위가 주는 짜증에 실컷 젖어있다가 요근래 가을이 펑펑 내리더니 금방 완연한 가을이다. 성격이 급하거나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은 벌써 겨울에 가 있기도 하고. 같은 새벽즈음인데 여름의 것과는 생각과 불안의 밀도가 한참 다르다. 불안해 죽겠다. 괜찮다가 한 번 불안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걱정의 수렁에 빠지고 누구도 시키지 않았건만 고통의 늪에서 혼자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멍하니 티비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딴 데로 시선을 옮기느라 또 에너지를 쏟고. 도대체 이 비효율적인 감정의 노동을 나는 왜 매번하고 있는 것일까? 가을 탄다고? 우울하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가을 한 두번 겪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맥을 못 추고 이렇게 허덕이..
김주혁 씨의 장진영 씨의 팬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들이 나온 영화는 거의 다 본 듯하다. 그리고 둘은 두 편의 영화도 함께 찍었고. 삶과 죽음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접하여 공존한다더니 황망하기 짝이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버지랑 사이가 좋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닌데 불편한 건 어떻게 해결할까? 뭐 평생을 함께 살다보니 굳이 관계의 호전을 위해 뭔가를 하면 할수록 더 나빠진다던가 맘이 상했던 적이 있어서 결국은 그저 그는 그, 나는 나 그러고 사는거다. 독립하고 고향을 떠나와서 나이 먹고선 부딪힐 일이 거의 없어 그리움이 넘실댈 때도 있다 분명. 그럴 땐 수줍은 전화를 하며 퉁명스런 통화로 끝맺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그런 사이다 나와 아버지는. 오늘 갑자기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 교회사람들과 문병을 위해 서울에 올라오고 계신다고 내일 오전에도 서울에서 약속이 있으니 우리집에서 자고 가셔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오시냐 우리집에 찾아오실 수 있..
어젠가 그제는 드라마를 보다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막연히 울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고 싶단 생각에 운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라고 새삼 느꼈다. 눈물이란 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넘침이라고만 생각했지 감정의 생성이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난 왜 울고 싶었을까 나는 왜 울고 싶을까 우겨 넣어도 삐죽이 튀어 나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나 아니면 울음으로 지저분한 감정을 퍼 내고 싶었나 잘 모르겠다 무엇때문인지는. 그냥 다만 나는 조금 슬펐고 울고 싶었다 운다고 나아지면 속편히 울기만 할 텐데 마음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이미 지겹도록 경험한 터. 뭔가를 바라고 운다기 보단 운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었을지도. 이게 무슨 개..
계절이란 건 참 신기하기도 하지. 마치 짠 것처럼 가을이 펑펑 내린 오늘 새벽 느닷없는 쓸쓸함에 잠을 설쳤다. 전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질 않는 상념들에 나는 몸서리 치며 잠에서 깨어 무거운 맘으로 출근을 하였다. 예전 맘을 나누었던 동료들은 모두 헤어졌고 나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느라 하루하루 견디는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내 우울함을 조금이나마 나눌 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하비3이 위로가 되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졸린 잠을 깨운다고 신 나는 아이돌 노래도 출퇴근을 하였는데 좀 쌀쌀해졌다고 바로 모하비라니 우습다. 나의 변덕이. 책도 주문하였다. 꽁치를 먹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삶. 책도 책이지만 모친의 목소리가 그리웠는데 모친이 때마침 보이스톡을 걸어주셨다. 잠이 걸린 긁힌 목소리. 그..
어제는 아 그나마 살 것 같다, 그랬는데 오늘 지금은 아 짜증나네 진짜, 그러고 있다. 더 웃긴 건 그래서 누군가 요즘 잘 지내? 그럼 선뜻 그러엄! 하질 못하겠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이렇게나 내가 나약하구나. 미래에서 오신 분이 슬쩍 스포라도 날려 주면 좋으련만. 이런 쓸데없는 꼼수나 생각하고 있고. 잘 하는 짓이다. 이렇게 하루 하루 버티는 게 삶이라니. 누구 말마따나 견디는 삶이 아니라 누리는 삶 좀 살아봤으면. 오늘도 지겹고 지친다.
뭔가 요즘은 멍 때리며 살기를 테마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직도 하였고, 그냥저냥 3주 차이다. 이제는 팀장도 아니어서 사람 관리하느라 힘든 것도 없고, 상식 이하의 괴롭히는 상사도 없어서 내 양심을 팔면서 다닐 필요도 없다. 아직까지는. 자율 출퇴근이라 8시 30분 칼출근에 근태가지고 난리 떠는 일도 없고, 국가에서 지정한 근무 시간만 충족시키면 알아서 퇴근하고 출근하는 생활이랄까? 팀원들하고는 아직 서먹하지만 이맘 때쯤 너무 친한 척 하는 게 오히려 우습고 징그러운 것 같아 탐색모드로 조심하는 고양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진 이 회사 괜찮다.아직까진. 회사는 모두 다 비슷하기 때문에 그나마 맘 놓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동료가 있냐 없냐에 따라 근무 연수가 결정된다고..